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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화폐 - 원(₩), K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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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4,922회 작성일 23-01-19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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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화폐 단위는 원입니다. 이는 한국은행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초기에는 圓(원)이라는 한자를 사용했지만, 화폐개혁을 거치면서 현재는 한글만을 사용합니다. 화폐개혁은 구화폐의 유통을 중지시키고 신화폐를 도입하여 화폐의 가치를 재조정하는 정책적 및 경제적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화폐 단위는 ISO 4217 코드로는 KRW로 표기되며, 기호는 ₩를 사용하고, 영문 표기는 WON입니다. 보조 단위인 전(Jeon)은 현재는 회계용으로만 사용되며, 환율 계산 등에만 사용됩니다. 이런 화폐 개혁의 역사를 거쳐 오늘날의 원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일제강점기(1910년-1945년) 동안,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았고, 한국의 통화는 일본 엔으로 대체되어 일본의 통치 체제 하에 조선 엔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하지만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한반도는 미국과 소련의 점령군에 의해 분단되었고, 이에 따라 남한과 북한은 각각의 통화를 도입하여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첫 번째 원화는 100전으로 나뉘었으며, 1946년에는 조선은행이 10원과 100원 권을 도입했습니다. 이어서 1949년에는 5원 권과 1,000원 권이 추가로 도입되었습니다. 이러한 원화의 도입으로 한반도는 두 개의 분리된 통화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이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1950년 6월 12일, 한반도는 6.25 전쟁으로 발칵 앉았습니다. 전쟁 초반부터 한국은행은 급격히 밀려나게 되었고, 급히 피난을 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금과 은을 보호할 수 있었으나, 대부분은 남겨두고 온 꼴입니다.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한국은행은 인민군에게 넘겨졌고, 그 결과 남은 금과 은, 그리고 105억원어치의 미발행권이 남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이 남은 자금을 이용해 남한 정부의 경제를 압박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미발행권을 사용하고, 부족한 경우 조선 서적인쇄 주식회사의 설비를 동원해 조선은행권을 발행하기도 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적군에 의해 아군의 화폐가 무참히 발권되었습니다. 이에 정부는 화폐 개혁을 단행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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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총재가 한 도쿄 지점에 긴급 전화를 걸어, 일본 대장성을 통해 새로운 도안을 가진 100원권과 1,000원권 지폐를 빠르게 대량으로 인쇄해야 한다는 임무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대장성에서는 이 임무를 완수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이에 대장성의 부총재는 지시를 받자마자 GHQ(연합군 사령부)에 상황을 보고하였고, GHQ는 대장성에 신속한 도안 제작을 명령했습니다. 이는 당시 일본에서 사회주의자 탄압과 노동자 파업이 심화되어 있던 시기로, 상황의 심각성을 감안한 조치였습니다.

대장성 인쇄청장은 연합군과의 협력이 일본의 생존에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여, 노동자들에게 무기한 철야특근을 명령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신도안은 단 이틀만에 확정되었고, 지폐 인쇄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GHQ에서 급파한 미군 병력들이 인쇄소를 급습하여 노동자들에게 인쇄를 강요했고, 이로 인해 보통 6개월이 걸리는 작업이 열흘 만에 완료되었습니다. 결국 7월 13일에는 첫 번째 배치의 인쇄물이 대한민국에 도착했습니다.



1950년 6월 25일부터 1950년 7월 20일까지, 한국은전에서는 피난자금으로 조선은행권을 긴급 인출하고, 각 자연인 당 10만 원을 제공했습니다. 그리고 적이 불법으로 유통한 조선은행의 미발행 1000원권과 북조선중앙은행권을 무효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어 1950년 9월 15일부터 1950년 9월 22일까지 한국은행권의 긴급 교환도 진행되었습니다.

1952년에 서울을 완전히 되찾은 후, 1953년 2월 15일에는 긴급 명령으로 화폐개혁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때 환율은 1달러당 6000원이었고, 대한민국 화폐와의 교환 비율은 100원당 1환으로 설정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경제 통계에 따르면, 이 기간에 도매물가지수는 1945년부터 1953년까지 약 1만 배만큼 폭등했습니다.

500원권은 1952년에 처음 도입되었으며, 1953년에는 영어로 표기된 "원(Won)"이라는 액면가의 지폐가 발행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한국 원화의 첫 발행이었습니다. 그리고 1962년 6월 10일에는 1원당 10환의 비율로 원화가 다시 재도입되었습니다.



1962년에는 화폐개혁이 이루어졌고, 영국에서 발행된 한국은행권에는 총 6종의 지폐가 있었습니다. 이 지폐들에는 남대문, 독립문, 총석정 등 다양한 문화유산과 한국은행 휘장이 도안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새로운 원화로 표시된 동전은 1966년 8월 16일부터 발행되었습니다. 1원은 황동으로, 5원과 10원은 청동으로 제조되었습니다.

1970년대는 경제규모의 팽창이 가속화되고 오일 쇼크의 영향으로 물가상승률이 높아졌습니다. 이에 따라 원화 가치가 계속해서 하락하면서 오십원과 백원 주화가 발행되었고, 서서히 지폐를 대체해 나갔습니다. 동시에 이때부터 천원, 오천원, 만원권 지폐가 처음으로 나오면서 고액권 지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75년 3월 22일에는 마지막 환 동전이 폐지되었고, 1983년에는 화폐체계가 완전히 정착된 시기였습니다. 이 때부터는 재질이 다른 새로운 종이화폐가 도입되었으며, 위조방지장치도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식별표식도 이때부터 지폐에 달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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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은 2006년 1월 2일에 화폐 위조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새로운 오천원권 지폐를 출시했습니다. 이어서 2007년 1월 22일에는 천원권과 만원권 지폐도 새롭게 출시되었습니다. 이번에 출시된 새 화폐에는 이전에 비해 많은 위조방지기능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들은 화폐의 안전성을 높이고 위조범죄를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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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5일에 한국은행은 새로 발행될 5만원권의 도안을 공개했습니다. 이 새로운 5만원권에는 앞면에는 신사임당의 초상과 "묵포도도" 그리고 보물 595호인 "초충도수병"이 포함되었습니다. 뒷면에는 조선 중기 화가 어몽룡의 "월매도"와 이정의 "풍죽도"가 디자인되었습니다. 이 새로운 5만원권은 기존의 지폐와는 달리 세로로 일부분을 디자인하여 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통해 한국의 화폐는 1980년대 이후 형용 화폐의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조금씩 새로운 디자인 요소를 도입하여 발전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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